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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뵾젋泥댁뿉꽌 깮湲 씪
  • 2월 7일 (금요일)

    호텔에서 식사를 마치고 시내로 들어섰다. 과연 유럽의 거리는 그 자체로 예술인 듯 싶다. 적어도 수세기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과 좁은 도로들이 고풍스런 맛을 풍겼다. 좁은 도시이지만 일방 통행 길이 많아서 목적지를 찾아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신호등과 교차로 system이 한국과는 달라서 많은 곤경을 겪었다. 차를 parking한 후 성마리아 novella성당을 향해서 걸어갔다.

    오늘은 황당한 일들의 많이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화장실 문화는 알아줄만하다. 너무 불편한 쪽으로... 관광지나 공공장소에서도 화장실이 없다. 하도 급해서 여기저기 찾아본 끝에 간신히 공중화장실을 발견하고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화장실 문이 열쇠로 잠겨 있었다. 난처해하고 있을때 저쪽에서 50대 초반의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화장실문을 열고서는 돈을 달라고 하였다. 주머니에 현금이 없어서 여행자수표를 내밀었다. 고개를 흔들었다. 여행자수표는 안 받는다고 하였다. 하도 급해서 사정을 하였으나 NO! 한마디만 하고 야박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열쇠를 다시 잠구는것이 아닌가?

    지금, 적어도 500M 떨어져서 관광하고 있을, 내게 현금을 한푼도 안맡기고 혼자 움켜쥐고 있는 아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운지.... 거기까지 뛰어갔다가 다시 화장실에 오느라고 진땀을 빼었다.


    [길 묻기]
    이탈리아의 거리에서 길을 묻고 있는 모습

    길은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었다. 그 거리에서 우리는 놀라운 일을 당했다. Novella에 다달았을 때였다.

     

    예쁘장하고 곱게 생긴 긴 파마머리의 소녀2명이 갑자기 나타나서 두명이 동시에 나의 몸으로 가까이 다가와 옷소매를 붙들었다. 소녀 한명은 들고 온 종이판대기로 내 눈을 가리고 한명은 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순간 조심해! 하고 뒤에서 집사람이 소리쳤다. 순간 그들이 소매치기라는 것이 상기되었다. 얼른 뿌리치고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태연히 유유자적하게 골목으로 사라졌다. 도둑들이 많다더니 듣던 대로였다. 귀엽게 생긴 애들이 참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소매치기라니... 기습적으로 당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되었다.

    그 지역을 여유 있게 둘러보고 duomo 에 갔다. 너무 광대하고 아름다운 성전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사진에 모두 담고 싶지만 너무 건물이 크고 웅장해서 전체의 모습이 카메라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 성전 안에서 미술 작품들을 관람하였다.

    작품들이 너무 아름다워 심취해 있을 때 집사람이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다. 점잖게 생긴 검정색 롱 코트를 입은 이탈리아 신사가 벌건 대 낮에 집사람의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 것을 목격하였다. 다행히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었다.


    이탈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의 건축물.

    위 건물은 초대 밀라노공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의 발안으로 138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에는 현지뿐만 아니라 알프스 이북 여러나라의 건축가들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성당으로서는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이어 세계 2번째의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점심 식사는 빵으로 때웠다. 가는 곳마다 온통 거리의 박물관이었다. 단테가 살던 생가와 그가 다녔던 교회를 방문했다. 저녁에는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야경을 즐기고 즉시 밤길에 피렌체를 떠나 볼로나(Bologna)를 행해 출발했다. 아우토반,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 곳을 통행하는 차량들은 보통 시속 200km의 속도로 달렸다. 고속도로 통행료는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볼로나에 들어섰을 때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 값싼 호텔을 찾느라 헤맸다. 집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와 함께 동행한 노처녀 박미수 교수는 한 수 위인 짠순이었다. 호텔비를 흥정하고 값이 비싸면 즉시 나와 다른 호텔을 찾았다. 너무도 피곤한 여인들이었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 빨리 쉬고싶었으나 극성스러운 짠순이들을 당해낼 힘이 없었다. 밤 늦은 시각이지만 여행자 가이드에 소개되어 있는 값 싼 숙소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길을 물을 때마다 사람들은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그 때 우리는 고마운 할머니 한분을 만났다. 우리가 그 숙소에 가는 길을 묻자 그 할머니는 자신의 차를 운전하며 우리를 직접 안내하기 시작하였다. 상당히 멀었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 반대편 외각지로 다시 빠지는, 족히10km 이상 되는 먼 거리였다. 우리가 찾던 바로 그 유스호스텔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문이 잠겨져있었다. 그녀는 인터폰에 대고 이탈리아어로 무어라 한참 이야기 했다.

    거절당했다. 이미 접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이다. 거기는 일반 호텔이 아니고 단체 예약이나 여행지들을 위한 합숙소 같은 곳이었는데 낮에 등록을 해야만 투숙할 수 있는 곳이라 하였다. 그 할머니는 정말 어쩔 줄 몰라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글썽이기 까지 했다. 밤늦게 숙소를 찾아 헤메는 외국인들이 걱정스러웠다보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오히려 우리가 그 할머니를 위로하였다. 우리다시 시내에 다시 들어와 150,000 리라 짜리 호텔방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