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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제 문서

    '1997.1.30 새벽3에 잠에서 깨었다. 한국시간으로 오전 10이므로 늦잠을 잔 셈이다. 시차로 인하여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오전 6시에 채플을 마친 후 아침식사를 하였다. 뷔페식으로 어제저녁과는 다르게 괜찮은 편이었다. 생선 절인 것, 마치 두부를 썰어놓은 듯한 치즈, 납작한 치즈, 으깬 치즈, 올리브 열매, 빵, 우유 등이 있었는데, 말이 괜찮지 입에 맛는 음식은 빵과 우유뿐이었다. 드디어 예루살렘의 첫날 여행이 시작되었다. 베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감란산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한지 5분 정도 되었을 때에 그 유명한 Barilan Street를 지나게 되었다. 어제 보았던 그 정통 유대인들만 모여 사는 지역이었다. 검은 복장을 한 정통유대인들이 점점 더 많이 보였다.

    우리를 안내하는 히브리학 박사 최창모교수는 계속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들은 4계절 모두 같은 복장을 입고 다닌다. 그들은 일도 하지 않고 오직 율법 연구에만 힘쓰며, 정부로부터 생활비를 지급받고 살아간다. 자녀들을 낳으면 꽤 많은 양육비를 정부로부터 보조받는다. 이들은 이스라엘 전 인구의 5%에 달하는 약 30만명이 존재하며 지역적으로 분리된 곳에 모여 산다. 이방인들은 절대로 그 지역에 거주할 수 없으며, 만약 그곳에 들어가 살다가는 즉시 테러를 당한다. 그들은 매우 특별한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방인의 옷깃을 스치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옷을 탁탁 털어서 정결함을 내보인다.

    우리가 지나가는 이 거리는 평상시에 자동차의 통행량이 많은 곳인데, 안식일만 되면 이 도로에 바리케이트가 쳐지며 차량들을 왕래하지 못하게 한다. 만약에 그 곳을 통과하려고 시도한다가는 돌에 맞아 차가 박살난다. 사람들은 그들을 볼 때 국가의 보조금이나 타먹는 암적인 존재로 볼 수 있으나 정부는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들도 하나의 정당을 가지고 있으며 국회의원 의석수의 약 10%를 그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더 큰 이유는 그 정통 유대파 사람들이 세계 각처에서 높은 재벌들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정부 보조금이 보내지게 되는데, 그 액수는 이스라엘국가 재정의 많은 부분을 충당한다. 일반 평민들도 그들의 신분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하므로 현실적으로 힘들다.

    히브리대학교 앞을 지나서 조금 올라가자 곧 감람산에 이르렀다. 감람나무(올리브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감란산이라 한다. 이 곳은 해발 830m의 고지로서 예루살렘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라 한다. 예루살렘의 옛 도시가 한눈에 바라다 보였다. 동쪽과 북쪽에는 유대광야가 펼쳐져 있고 서쪽으로는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금색의 둥근 지붕을 한 예루살렘 성전이 보였다.

    시온산에서 바라다본 예루살렘 금빛의 돔형 건물이 예루살렘 성전이다.
    예루살렘 경계에는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가 둘러져 있다. 이들 골짜기는 예루살렘을 보호하는 자연적인 방패역할을 하고 있어서 예루살렘이 요새화 지역이 되고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 한다. 또한 예루살렘은 지리적으로 남북을 연결하는 요지이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고자 많은 전쟁을 치루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 예루살렘을 가리켜 가장 거룩하면서도 또한 가장 더러운 곳, 즉 평화와 전쟁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한다.

    예루살렘 성전의 둥근 지붕이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빛났다. 그 지붕은 600kg의 금으로 도금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서있는 감람산 정상의 바로 아랫부분에 많은 무덤들이 있었다. 그 곳에는 여호사밧과 압살롬, 스가랴 등의 무덤도 있다고 한다. 감람산을 내려오면서 눈물의 교회를 들렀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장차 멸망할 것을 생각하며 우셨다고 하는 곳이다. 눈물의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창문을 통하여 예루살렘성전이 바라다 보였다.

     

    예수님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던 곳 겟세마네 동산에도 기념교회가 세워져있었다. 만국교회라고도 하며 겟세마네 교회라고도 하는데 1924년에 이태리의 건축가 안토니오바를로치가 설계하고 건축했다고 한다. 성전 전면에는 넓은 바위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 뒤쪽 벽면에는 예수님께서 바위에 앉아 기도하시는 모습이 모자이크 벽화로 장중하게 그려져 있었다. 교회 밖에는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고목의 올리브나무 8그루가 있었다.

    기드론 골짜기를 건넜다. 예루살렘성전을 향해 가면서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압살롬 무덤과 기타 몇몇 무덤을 보았다. 조금 올라가니 예루살렘 성벽이 가까이 보였다. 높은 성벽의 밑부분(약2~5m)에는 예수님당시 축조되었던 원형의 돌이 그대로 보존되었고 그 위로는 오스만 터키 때 증축되었다고 한다.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전 가까이에 이르니 높은 돌 벽이 보였다. 통곡의 벽이라고 한다. 그 벽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대부분 이스라엘사람들이었고 그 중에는 정통 유대인들이 더 많았다. 그 벽에다 이마를 부딪치며 기도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 곳은 유대교도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곳이며 옛 성전의 마지막 유물로 추앙하는 곳이라 한다. 이 벽은 헤롯이 주전 20년에 개축한 벽 중의 하나인데 주후 70년 이스라엘이 로마에게 완전히 멸망할 때 성전의 다른 부분은 모두 파괴되고 이 곳만이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들을 이 곳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다가 비잔틴 시대에 이르러서 일년에 딱 한번씩 성전파괴 기념일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그 날 이곳에 모여서 그들 민족의 분산됨을 슬퍼하고 그들의 성전이 폐허됨에 대하여 슬퍼하고 통곡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한다.


    통곡의 벽

    벽 앞에는 넓은 공터가 있는데 그 곳에는 소년들이 성년식을 거행하는 모습들이 여기 저기 보였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방문하기로 예정되었던 히브리대학에 갔다. 획일적이지 않은 자유분방한 학교 건물 양식이 매우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내부의 구조가 우리나라의 사각형 구조가 아닌 원추형의 모양과 각기 다른 형태의 강의실과 휴게실로 설계되어있었다. 히브리어시험에 합격해야만 입학할 수 있는 이 대학은 등록금이 1년에 2500불로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히브리대학에서...

    대학 총장을 비롯한 몇몇 교수들이 우리를 영접했고 함께 교내를 두루 돌아다니며 투어를 했다. 점심식사는 그 대학에 박사과정 중에 있는 한국 유학생으로부터 집으로 초청되어 제공 받았다.

    식사 후에는 Holocaust 기념관을 방문했다. 2차대전당시 독일의 나찌에게 600만명의 유대인들이 학살 당했던 것을 기념하는 야드바쉠이라는 곳이다. 너무 처참하고 참담한 실제의 사진들이 벽에 죽 걸려있었다. 이 곳을 방문하는 어린 학생들이 이러한 선조들의 참혹함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밖에 나오니 비가 부슬 부슬 내렸다. 마치 하늘도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다시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으로 향하여 갔다. 시온산에 다윗의 무덤 기념관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붉은 천으로 덮여져있는 길이 약 2m가량의 관이 있었다. 천 위에는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었다. 한 유대인이 그 관에 머리를 대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 곳을 나와서 마가의 다락방에 들어갔다. 건물 내부가 특이한 모형으로 설계되어있었다. 로마네스크식 건축물인데 천정이 아취식으로 되어있고 방 가운데 서있는 3개의 기둥은 주위 벽에 서있는 기둥들과 곡선으로 연결되어 아취를 이루며 천정을 바치고 있었다.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유월절 만찬을 드신 곳이며, 후에 이 다락방에서 오순절 강림이 일어난 곳이다.

    오늘의 마지막 순례지로서 베드로갈리간투교회(st. peter in Gallicantu)를 방문하였다. 이 교회는 가야바 대제사장의 옛 집터 위에 세웠다한다. 예수님께서 잡히시어 조롱을 받고있을 때 멀찌기 따라온 베드로가 이곳에서 예수님을 부인한 곳이다.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을때 닭이 울었는데 그 것을 상징하기 위한 닭의 모형이 그 교회 종탑 꼭대기에 세워져 있었다. 그 건물의 지하에는 예수님께서 갇이셨던 지하감옥이 있었다. 지하 구멍에 밀어 떨어뜨리면 혼자서는 나올 수 없는 토굴 감옥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이나 우리 일행은 그 곳에 모두 내려가 일제히 눈물을 흘리며 통성기도를 하였다.

    저녁만찬은 예정대로 전 이스라엘 한국대사였던 아셔나임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 국회의장 및 몇 몇 인사들이 함께 자리를 하였다. 외무성에서도 인사들이 참석하였고 우리 일행이 이곳에 온 곳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식사 후에는 예루살렘 밤거리를 구경하기 위하여 다운타운에 들어갔다. 도로 주변 인도에는 석유난로들이 가로등처럼 많은 청소년들이 왕래를 하였다. 까페와 춤추는 홀도 있었다. M16 소총을 어께에 맨 남 녀 군인들도 함께 어울어져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밤거리 소총을 멘 여군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