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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제 문서

    1997년 2월 1일 오전4시

    어제 (1월31일)는 사해에 다녀왔다. 사해바다에 가기 위해서는 유대광야를 지나 여리고 방향으로 가다가 오른쪽(남쪽)으로 더 내려가야 하는데 그 여정이 너무나 인상적 이었다. 기이한 것은 예루살렘을 벗어나 유대광야로 약5분정도 내려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저께 감란산에서 기드론 골짜기의 건너편에 있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회와는 또 다르게 광야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복음서에서 자주 접했던 유대광야였다. 예수님께서 40일간 기도하신 곳이다. 그곳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세계요한이 외쳤던 그 광야를 접하게 되었다.

    여리고 쪽으로 내려가면서 그 황폐한 땅, 유대 광야를 면밀히 관찰했다. 가끔 유목민들이 거처하는 집단 장막 촌을 보았고 양떼를 이끄는 어린 목동들도 보았다 그 유목민들은 주로 아랍어를 사용하는데 국적이 없다고 한다. 엉성하게 지은 움막에서 살아가는 그 유목민들은 사실 알고 보면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한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양 한 마리의 값은 우리 원화로 약40-50만원 선으로서 그들이 양을 500마리정도 만 가지고 있어도 2억이 넘는다. 그래서 그런지 예루살렘에 인접한 유목민촌에는 트랙터를 보유한 곳이 꽤 되었다. 유대광야는 등성이와 골짜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등성이에서 보이는 수평의 황색 줄들이 촘촘히 그어져 있다. 그 무수한 횡선들이 양떼들의 길이라고 한다. 몇 천년 이전부터 양들이 지나다니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그 길들이 마치 거미줄을 보는 듯이 그어져 있었다.

    유대광야

    베다니를 지나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기압의 차로 귀가 멍멍해지기 시작했다. 강도 만난 자를 구해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여관도 지나쳤다. 더 밑으로 내려갔더니 이제 해발 0의 지점표시가 되어있는 팻말이 보였다 거기부터 아래쪽으로는 바다 속을 들어가는 것이다(물은 없지만) 버스는 더 밑으로 내려갔다. 계속광야가 이어졌다. 해발0의 지점에서 -400m를 더내려가야 사해를 만나게 된다. 그 사해바다가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 이라한다. 사해표면까지만 해발 마이너스 400M인데 그 바다의 깊이는 또 400M가된다고 하니 심히 깊은 구렁이다.

    광야를 지나면서 최창모 교수님은 광야를 많이 느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광야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여름의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60도 의 높은 고온이 계속되며 밤에는 4도-6도로서 매우 기온차가 심한 곳이라 한다. 또 기이한 것은 예루살렘에서는 비가 한참내리는 데도 예루살렘을 떠난 약5분정도 광야에 내려오면 해가 쨍쨍 내리쬐는 건조하고 더운 날씨를 만난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광야에서는 생물들이 살아가기가 매우어렵다고 한다. 씨를 뿌려도 나지 않고 땅을 파고 물이 나오지 않는 곳 밤에는 무서운 맹수들이 들 끊는다고 한다. 맹수의 종류도 다양하여 사자 하이에나 살쾡이 독사 기타 독충들이 많아서 밤에는 매우 무서운 곳이라 한다.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도 이 광야에 72시간만 홀로 내버려두면 그는 반드시 죽는다고 한다. 낮에 뜨거워서 목말라 죽을 수도 있고 혹은 불볕에 타 죽을 수도 있으며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밤에는 맹수들에게 잡혀 먹힐 수가 있다고 한다.

    요즈음에도 가끔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이곳 광야에서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를 찾으려 아무리 애써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찾은 것은 단지 그의 머리카락 한 뭉치 정도만 광야의 어느 지점에서 발견할 뿐이라고 한다. 맹수들에게 잡혀 먹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 도무지 알아낼 수조차 없다고 한다. 결국 이 광야는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곳이라 한다.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 한다. 이곳은 가진 자와 없는 자의 구별이 없는 곳 즉 신분의구별이 없는 곳이다. 이곳은 단지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는 곳이다. 이곳은 3일을 넘기지 못하는 곳, 그래서 인간의 한계는 3일이라 한다.

     

    사해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변 길을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도중에 푸른 종려나무가 무성한 오아시스도 지나쳤다. 그 유명한 쿰란도 지나쳤다. 쿰란은 돌아올 때 자세히 보기로 하고 계속 남쪽으로 달렸다. 오른쪽편의 광야에는 마치 붉은 흙더미만으로 형성된 것 같은 높지 않은 산맥들이 남쪽으로 계속 이어졌고 더 내려가니 맛사다가 보였다.

    맛사다는 높은 흙더미의 산과 같은데 꼭대기에는 평평하게 보였다. 높이는 약400M이며 정상의 평지는 약250M의 폭과 600M정도의 길이로 된 매우 넓은 땅이었다. 그 절벽이 험난하여 이곳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매우 훌륭한 요새였다. 맛사다는 기원전 2세기 마카비 왕조의 대제사장이었던 요나단이 요새화 하고 기원전 103-73년 알렉산델 안네우스가 진지를 구축했으며 기원전 43년 헤롯대왕이 부친을 암살한 후 기원전 37년까지 (유다임금이 될 때까지) 유대인을 피해 도피처로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헤롯대왕이 살았던 궁전이 발굴되어 있었다. 그리고 헤롯의 목욕탕도 매우 규모가 크게 설계되어있었다. 당시의 모자이크바닥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또한 이곳은 서기 66년 로마제국에 항거하여 싸우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빼앗기고 멸망하던 중 유대인 지도자 에리아잘 벤야이르가 이끄는 유대인 열성당원들 약960명이 이곳 맛사다 요새에 피신하여 로마에 대한 저항운동을 계속 했던 곳이다 로마군인들은 마사다의 험한 지형 때문에 쉽게 탈환하지 못하고 밑에서 완전 포위하여 진을 치고 유대인들이 물과 식량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 유대인들이 굶어죽지 않고 생존해있었다 한다. 어떻게 이들이 3년 동안이나 이곳에 버티고 있었는가는 그 지형을 구석구석 관찰하면서 알 수가 있었다. 그 요새에는 여기저기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커다란 동굴과 같은 웅덩이가 수십 개 있었다. 그들은 그 지형을 잘 이용해서 어쩌다 비가내리면 그 빗물이 한 방울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물웅덩이 저장탱크로 흘러 들어가도록 수로를 잘 만들어 놓았다. 그 시설은 실제 탐사반들이 직접 실험한 결과 비가 오면 불과 몇 시간 안에 그물탱크에 물이 꽉 채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넓은 평지에는 채소와 곡식을 심을 수 있는 좋은 땅이었고 이상한 것은 그 곳의 특이한 기후로 곡식들이 냉장고 없이 100년 이상 썩지 않고 보관이 되는 특이한 지형 이라한다.

    로마군들은 생각을 바꾸어 서쪽 편에서 높은 토담을 쌓아 (흙으로 절벽을 메꾸어 경사진 길을 냄) 마사다 요새에 접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서 마사다의요새가 무너지게 되자 지도자 벤야이르는 모든 식구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이제 우리가 결국 로마군에게 함락 당하게 되겠는데 우리가 그들에게 잡혀 갖은 수모를 당하느니 오늘밤 자유인으로서 영광되게 죽자고 연설했다고 한다.

    이 말에 감동한 각 가족의 가장들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먼저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들도 함께 자결하였다고 한다. 이때 남은 곡식과 식량은 그대로 놔두고 모든 것은 불로 태웠다한다. 이는 로마에게 우리가 식량이 없어 굶어 죽은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결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요새푸스의 “유대전쟁사“에 의하면 그때 모두 자결한 것은 아니고 물 탱크 속에 숨어있던 7명의 노인과 어린이들이 살아있었으며 모든 사실들이 그들에 의해 전해졌다한다.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새해바다에 수영하러 들어갔다. 물을 찍어 혀에 대보았다. 짜다 못해 혀를 톡 쏘았다 뒤로 물위에 눕자 몸이 둥둥 떴다. 염분이 보통바다 보다도 10배나 많은 35%가 함유되어있고 그물에는 인체에 유익한 각종 광물질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사해는 이스라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자원이며 사해 남단에는 이물에서 광물질을 채취하는 공장들이 가동 중에 있다고 한다.

    한 평생 바닷물 속에 한번도 물속에 들어가지 못했던 아내가 조금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물속에 들어왔다. 그 미용이 뭔지.....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찬물로 목욕을 하지 못하는 그가 그리 덥지 않은 날씨에 바다 속에 들어온 것은 좋은 미용효과 때문인 것 같았다. 새까만 진흙을 온몸에 발랐다. 모두 식인종들 같이 보여서 서로 보고 웃었다. 진흙 맛사지를 끝낸 사람들은 야외에 거대한 분수처럼 물이 솟구치는 샤워시설에서 몸을 씻고 있었다. 저 물이 얼마나 차가울까? 잔뜩 준비하며 솟구치는 물줄기에 몸을 들이대자 놀랍게도 그것은 매우 따뜻한 온수였다. 온천물을 그대로 뿜어 올리는 것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온천 탕에 들어갔는데 거기는 남녀 혼탕이었다. 물론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곳이었다.

    사해바다

    이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서 사해 건너편에 펼쳐져 있는 모압 땅을 바라보았다.(지금은 요르단 땅) 모압 땅을 이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처음이라고 최교수님이 말했다. 아까 오다가 보았던 쿰란을 방문했다. Qumran은 사해사본을 발견한 장소이며 성경사본을 기록한 엣센파 사람들의 주거지역이었다. 이지역의 발견은 최근 1950년대에 한 양치기 목자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1000여점의토기가 발견되고 쿰란 주변의11개의 동굴에서 사해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한다. 이들 중 약4분의1이 구약성경사본이며 나머지는 주석 신학서 규율집 들로서 대부분 양피 가죽이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 놓은 것들이라 한다. 사해 구약사본은 현존하는 구약 사본들 중에 가장오래된 것이며 에스더서만 제외하고 구약의 모든 책들이 전부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사본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세기 사이의 것이라고 한다.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왔다. 아직 해가 남아있으므로 베들레헴으로 내려갔다. 그 지역은 예루살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크리스마스 네온싸인들이 즐비한 기독교회들이 많이 보였다. 배들레헴 시청광장 건너편에 예수님탄생교회가 커다란 모형으로 세워져있었다. 이 교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동굴위에 (말구유) 콘스탄틴 대제가 주후 325년에 건립했다한다. 십자군당시 교회를 보수할 때 입구의 높이를 1.2M정도 로 낮추고 그 폭도 좁게 만들어 놓았는데 이는 교회입구로 십자군시대 회교도들이 말 타고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좁고 낮게 만들었다고 한다.


    유대베들레헴
    일년열두달 성탄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

    머리를 숙이고 우리 일행들은 그곳을 들어갔다. 2천년전의 모습이 보존되어있는 말구유에 들어갔다. 무수한 등불과 촛불로 장식되어있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그 날을 상상하며 우리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찬송을 불렀다.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날이 어두워졌다. 상점들의 문이 많이 닫혀있었다. 유대교인들의 안식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상점의 간판불이 문이 닫힌 채 켜져 있는데 그것은 안식일이 끝나기까지 그대로 켜져있을 것이라 한다. 아무도 그 스위치를 내릴 사람이 없다고 한다. 안식일 날 불을 켜거나 끄는 행위는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기 때문이라 한다.

    호텔식당에서는 안식일을 즐기는 신식 유대교도들이 북적되고 있었고 모여서 예배하는 모습이 보였다. 찬송소리도 요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