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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제 문서 1997년 2월 2일 (주일)

    이른 새벽 동터오를 무렵 갈릴리 해변을 산책했다. 온통 예수님의 발자취로 가득한 곳이었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의 삼십여 년의 세월을 보내신 갈릴리에 대한 예수님의 애착이 짙게 깔려있는 듯 하였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갈릴리 해변을 걷는 우리는 발걸음 한걸음마다 예수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새벽공기를 한 숨 들이쉴 때마다 같은 공기를 숨쉬셨을 주님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저기 보이는 곳이 온천 휴양지인 티베리아이다. 티베리아는 주후 17년 헤롯왕의 아들 헤롯 안티바스(Herod Antipas)가 건설한 도시로서, 로마 황제 티베리아스(Tiberias)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지었다 한다. 이 도시가 세워진 후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이곳에 살기를 거부 하였으나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 된 후 차츰 유대인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유태 지식인들이 이곳에 모였고 미슈나(Mishnah)와 팔레스틴 탈무드(Palestinian Talmud)가 이곳에서 완성 되었다고 한다.

    갈릴리 해변서 권호덕 목사님의 설교로 주일 예배를 드렸다. 문영식 박사님께서 대표기도를 하였다. 예배를 마친 후 곧바로 차를 차고 가이샤라를 지나 가나혼인잔치 교회를 방문했다. 그 곳은 바롤로매 교회 옆에 있었다.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한 후에 물을 포도주로 바꾼 최초의 기적이 있었던 곳이었다. 예수님 당시 있었던 포도주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우리 일행은 당시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포도주를 시식하였다.

    예수님당시 있었던 실제의 포도주 항아리

    예수님의 어린시절 고향이었던 나사렛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기름진 평야의 가운데 키브츠들이 보였다. 나사렛에 도착했을 때. 최교수가 말하셨다. 예수님의 어린시절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이 지역의 어린이를 보면 당시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이곳을 지나다니는 처녀들의 모습 속에서 동정녀 마리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하였다.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를 예고 받았던 그 지역에 커다란 교회가 세워졌다. 주일날은 그 교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 그곳의 규칙이지만 특별히 우리 일행에게는 1동의 문만을 열어서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커다란 교회 담벽에 각주의 언어로 제목을 붙인 그림들이 많이 걸려있었다. 나사렛은 유대 베들레헴과 함께 전통적인 기독교 도시이다. 그곳을 출발하여 다시 서쪽으로 향했다.



    나사렛 시내

    나사렛은 비옥한 이스르엘 평원이 멀리 바라보이는 해발 380미터 정도 언덕위에 세워진 작은 마을. 현재 아랍 사람들이 약 4 만 명 가량 살고 있으며, 이들은 비록 아랍 사람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나사렛은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이며, 예수님께서 성장하신 곳이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후 헤롯을 피해 애굽으로 가셨다. 그후 애굽에서 돌아오신 후에도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타 유대의 왕이 된 것을 아시고 나사렛에서 성장하셨다. 그 후 예수님 성호 앞에는 '나사렛'이 언제나 붙어 다녔다고 한다.

    이스르엘 평야에 도달하기 전 왼쪽에 가파르게 절벽진 그리 높지않은 지대가 보였다. 그 곳이 바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절벽아래로 밀어뜨려 죽이려했다는 곳이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은 그 자리를 유유히 빠져 나오셨다는데 어떻게 가능했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했다. 최교수의 말에 따르면 그 때가 바로 안식일 이었는데 유대인의 율법에는 안식일에 하루에 걸을 수 있는 얼마간의 허용량이 있었다고 한다. 예수님을 이끌고 그 곳에 거의 다달았을 때 이미 그 허용량이 초과되었다고 한다. 웃기는 일은 유대인의 율법에 허용량이 초과되었을 때 그 자리에서 기도하면 다시 걸을수있는 허용량이 주어진다고 한다. 그 때 기도하는 틈을 타서 예수님께서 그 자리를 유유히 빠져나왔다고 한다.

    이스르엘에 이르렀을 때 왼쪽으로 둥근 포물선의 모양의 산이 평야 가운데 오똑 서 있는데 그곳이 바로 변화산이라고 했다. 우측과 정면 쪽 평야 끝에는 갈멜산맥이 둘러져 있었다. 므깃도에 도착했다. 므깃도는 아마겟돈이라고도 하는데 이 지역은 솔로몬 시대로부터 아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 한다. 므깃도 유격지는 적어도 2500년전 아랍시대 건축물인 바닥과 벽의 일부분이 발굴되어 있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그 요새에 성밖에 있는 무물에서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기발하게 적에 노출되지 않고 물을 퍼올릴 수 있는 땅굴을 파놓은 것이 그대로 보존되여 있었다. 땅아래로 수직으로 60m를 파내려가서 그 밑에 다시 수평으로 80m를 우물 쪽으로 파들어가 물이 요새안으로 흘러들어 오도록 설계되어있었다. 그 당시 도구도 없이 그 단단한 돌덩이의 땅을 굴착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므깃도

    이스라엘 평야 중에서도 므깃도는 동서남북을 서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으므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고 한다. 제국들의 군대는 이곳을 통과하여 지나갔고, 가나안 땅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전투가 가장 많이 벌어졌던 곳이라고 한다. 솔로몬 왕은 므깃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곳을 강화시켰고, 이 지역의 행정적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923년경 애굽의 시삭(Sisak)은 므깃도를 파괴하였고 그 후 아합왕때 이곳은 다시 재건되었고 요시아왕은 북진하는 애굽 군대를 이곳에서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한다.

    갈멜산맥을 넘어서 가이사라에 도착했다. 망망대해가 펼쳐진 항구도시 가이사랴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헤롯대왕 때에 세운 성체들의 골격들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주로 아래부분만) 가이사랴는 로마와의 가장 가깝고 편리한 해상도를 제공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항구이다. 사도바울이 2차전도 여행 후 이 항구로 돌아왔다. 사도바울은 이곳에 있는 헤롯의 궁에서 2년 동안 감금되어 머물다가 로마로 호송하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의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등에게 설교했다는 기사가 사도행전 24:26, 25장, 26장 에 나와있다. 팔레스타인은 복음을 담기에는 매우 좁은 땅이라는 것을 인식한 사도바울은 바로 이 항구에서 저 망망대해로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수출하던 항구, 이 도시야말로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가이사라는 세계를 향한 이스라엘의 창문이었다.

    차를 타고 다시 남쪽방향으로 내려갔다. 이 도로는 2번 국도로서 하이파와 텔아비브를 연결하는 약150km의 도로로서 샤론평야를 지나게 된다. 텔아비브에 이르자 오른쪽으로 다시 지중해가 짙푸르게 나타나 보였다. 왼쪽에는 마치 하와이의 와이키키와 흡사한 고층건물의 호텔들이 우뚝우뚝 서있는 번화한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각종 대사관들이 집결되어 있기도 했다. 겨울에도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고 여름철만 되면 이 지역은 인파들로 가득 메어진다고 한다.

     

    이곳을 예루살렘과는 대조적인 아주 개방된 곳으로서 향락이 존재하는 곳이라 한다. 여자들이 상체를 모두 드러내고 해변을 거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 정도이고 심지어는 팬티까지 벗은 알몸으로 거니는 것을 운 좋으면 볼 수 있다고 최교수님이 설명했다.

    이 도시는 이스라엘 인구의 약40%가 집결되어 살고 있다. 텔아비브 해변 아래쪽에 욥바가 있는데 그 거리는 거의 천년이 넘은 건물들이 있었다. 욥바는 2000년 전 당시 베드로가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다는 곳. 부정한 음식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먹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환상을 보던 곳이었다. 그곳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의 후손이 그 건물을 관리하고 있었다. 당시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방법의 차원에서 갈등을 겪었던 것은 바로 그 환상 이후였다고 한다. 즉 사도베드로는 철저한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을 도외시한 복음전파의 방법을 바꾸어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게 된 계기가 이곳에서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과 베드로의 설교적 차원에서 틀리는 것을 베드로는 이방인에게 복음과 함께 유대인의 율법적인 생활 모두를 행하기를 강요했다 한다. 사도바울은 순수한 복음만을 전파하고 유대인들의 얽매인 율법생활 자체는 강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곳은 또한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배를 탓던 곳이다. 이런 모든 사실들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정확히 일치된다고 한다.


    욥바

    욥바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하이파 항구가 발전하면서 서서히 그 기능을 잃었다 한다. 주민들도 비좁은 욥바 시내에서 벗어나서 그 북쪽으로 신시가지를 이루며 옮겨 갔다고 한다. 신시가지는 '봄의 언덕' 이라는 뜻을 가진 텔아비브라고 새로이 이름지어진다. 텔아비브는 순수한 유태인들의 도시로써 이스라엘 건국 후 급속히 인구가 증가한 도시이다.

    이제 이스라엘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를 친절하게 이 곳 저 곳으로 호송해주었던 베니 운전사와 작별사진을 찍었다. 벤구리온 공항에서 출국심사를 받게 되었는데 매우 까다로운 절차가 있었다. 하도 테러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서 감시가 심하다. 만약에 거리에 임자 없는 가방이 놓여있으면 그 일대는 여기저기로 피신하는 대소동이 일어난다고 한다. 가방속에 폭발물이 들어있을지 몰라서 그런다. 경찰관들이 나타나 일차적으로 로보트를 이용해 그 가방을 폭파한다고 한다. 그렇게 까다로운 출입국 심사하는 곳은 세계에서 이곳 하나뿐인 것 같다.

    그 공항에서 식사를 마치고 터키로 향했다. 비행기내부가 너무 좁아서 약 1시간반가량의 비행시간이 매우 힘들었다. 터키공항에 내려오자마자 심한 매연냄새가 났다. 시내는 온통 석탄공해로 뿌옇게 오염되어 있었다. 호텔로 오는동안 석탄매연냄새에 재치기가 몇번 나왔다. 요즘은 그래도 가스연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덜한데 작년까지만해도 모든 난방연료들이 석탄(조개탄)이었다고 한다.

    이제 이곳에서부터 사도바울의 선교 사역지들을 방문하게 된다. 사도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소아시아의 일대를 여행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배행기로 이스탄불에 도착한 시각은 밤 12시30분이었다. 비행기 시간의 연착으로 늦었다. 이스탄불은 고대 이스탄불과 유럽이스탄불 그리고 아시아 이스탄불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호텔에 들어와 쉬었다. 내일은 새벽 일찍이 비행기를 타고 이즈미르로 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