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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6일 (목요일)

    아침 6:30 어제 오후 로마에 도착하였다. 레오나드로다빈치 공항이었다. 로마는 국제적인 모습이 유명하거니와 또한 날치기 소매치기 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조금도 한눈을 팔지 말라고 한다. 공항직원들이 전화카드 있으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한국의 전화카드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라 한다. 우리를 인도하는 Bus의 구조가 좀 특이하였다. 버스의 밑바닥 쪽에 화장실과 세면장이 있었다. 버스의 면적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바닥 층에 기묘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기사의 이름은 도미니크, 한국가이드는 문인숙이라는 여인이었다.

    로마에 도착하여 곧바로 한국식당에 가서 저녁식사를 마쳤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근처의 어느 Bar에 들어가 피자를 시켜놓고 우리일행은?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그 모임이 여행일정 중 함께 보내는 마지막 밤 이었다. 어제 저녁 차 박사님이 또 아내에게 침을 놓아주셨다. 우리 가족이 로마에 더 남아있기로 한 사실과 랜트카를 이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차봉오 박사께서 우리에게 랜트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랜트회사는 우리나라에도 지사가 있는 이름 있는 회사의 것을 이용하라 하셨다. 보험도 꼭 들어야 한다고 한다.

    로마의 거리 그 회사들은 1) AVIS?2) HERTS?3) BUDGET 등인데 1)번과 2)번을 이용하라 했다. per day(기간), insurance(full coverage)보험종류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을 들었다. 김성철박사님 부른 이태리 가곡은 정말 훌륭하다. 몇 곡을 원어로 불러주셨다. 그 곳에서 포도주잔이 기울어졌다. 거의 모두가 포도주를 마시는데 (동석한 대전 모 교회 목사님까지도) 김궁헌 박사님은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나도 마시지 않았다(마시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아침식사를 마시고 9시에 호텔을 나섰다. 바티칸시국에 들어가기 위해 떼메르강을 건넜다.

    바티간 시국에 있는 성 베드로의 성당은 너무나도 웅장하고 장엄했다. 정말로 아름답고 찬란했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그 어떠한 곳들보다도 제일 화려하고 멋있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1506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20년만인 1626년에 완공되었다한다. 가로 세로 120m에 높이가 136m의 돔형 건축 안에는 각종 색상과 모자잌이 그려져 있었다. 초대 교황인 베드로성도의 무덤이 있었다.

    바티칸성전안의 벽화 바티칸 박물관이라고도 일컷는 바티칸궁전, 그 곳은 정말 내평생 잊을 수 없는 너무나도 아름아운곳, 이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었다. 책에서만 보아왔던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미술작품들이 온통 벽과 천정에 그려져 있었다. 말로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피에르도 광장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광장으로 가운데 탐이 세워져 있었다.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기원후 72년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네로 시대의 이완된 국가 질서를 회복한 후, 네로의 황금궁전의 일부인 인공호수을 만들었던 자리에 착공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80년) 때 완공하였다. 완성 축하를 위해 100일 동안 경기가 열렸으며, 그 때 5,000마리의 맹수가 도살되었다고 한다.

    장대한 타원형 플랜이 있는 투기장은 아치와 볼트를 구사한 로마 건축기술의 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건조물로서 거대한 바위 축대위에 축조되었으며, 이 축대는 점토질의 인공호수위에 설치되어 지진이나 기타 천재로 인한 흔들림을 흡수하도록 설계되었다. 약 5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제국 최대의 투기장이었다. 사도바울과 베드로가 갇혔던 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들이 세례를 행했었으며, 또한 디모데서를 쓴 곳이었다. 사도바울이 묶여있던 돌기둥들을 보고 만져보았다. 콜로세움은 또한 그림에서 보아왔던 것과는 천지차이의 웅대함이 보였다.

    벤허의 경기장과 진실의 입(하수도 뚜껑으로 만듬)에서 사진을 찍었다. 쿼바디스의 길을 따라 카타쿰으로 갔다. 카타쿰바 지하 예배당은 우리 기독교를 전 세계에 전파할 수 있었던 역사적인 산물이었으며, 수많은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는 비밀 교회였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의 마지막 예배를 드렸다.

    카타쿰바

    네로 시대의 박해를 비롯하여 기독교인들은 많은 박해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첫 박해를 전후하여 초기의 선교활동은 로마 근교에 살던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계층 사람들에게 주로 많이 행해졌으며, 그들이 살던 지역은 주로 테베레강 어귀와 아피아 가도 주변이었다고한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신자들은 예전처럼 자유롭게 모임을 가질 수가 없었고. 자연히 신자들은 주위의 눈을 피해 로마의 성 밖에서 은밀히 모였는데 그 중에서도 아피아 가도 주변에 많이 있던 지하 무덤 안이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되었다고한다. 급기야는 신자들의 무덤도 그 안에 마련되면서 지하 무덤, 즉 카타콤바의 면적이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고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모진 박해 속에서 초기 교회 공동체 신자들의 보금자리와 휴식처는 오직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의지하는 길밖엔 없었다. 카타콤바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적인 피난처였으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예절을 행할 수 있었던 교회였고, 또한 죽어서도 가까이 있고 싶어했던 그들만의 보금자리였다

    공항에서 그동안 함께 동행했던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 3명의 일행은 따로 떨어져 랜트카를 빌렸다. 로마시내를 벗어나 이탈리아 여행의 첫 번째 도시인 피렌쩨에 도착하였다. 그 시각은 밤 9시였다. 값싼 호텔을 잡기위해 여러 호텔을 드나들었다. 여러 번의 흥정 끝에 조그만 호텔에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