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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를 출발하여 라오디게아의 옛 도시에 갔다. 그 지역에 더 이상 발굴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 당시 지진으로 산산조각이 난 옛 도시는 현재의 도심지 땅속 깊이 묻혀 있으므로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특별나게 볼 수 있는 당시의 유적물들이 없었고 단지 몇 개의 기둥과 원형 경기장 등이 있었다. 파묵칼레 온천수가 이곳에 흘러 이르기까지는 물이 식어서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라오디아교회라고 사도요한이 말했던 이곳은 확실히 큰 도시였음이 분명했다.
터키정부에서 그 유적지를 발굴 한다면 아주 웅장하고 거대한 옛 도시의 모양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 발굴은 재력과 일치한다고 한다. 상당히 많은 비용을 소비하는 일이라서 재력이 없으면 발굴은 할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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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넓고 높은 지역을 성큼 성큼 앞장서 돌아다니는 아내를 보고 내 옆의 교수님들이 역시 어제 밤 침 맞은 효과가 있구나 하며 농담을 했다.
우리는 그 넓다란 지역에 산재하고 있는 2천년 당시의 유물들이 파편으로 흩어져 있는 모습들을 뒤로 남기고 다시 빌라델비아로 향했다. 현재의 지명은 Alasehir인데 그 곳도 도심지이기 때문에 개발을(발굴)할 수 없다고 한다. 단지 2개의 거대한 기둥만이 남아 있었다. 그곳은 포도의 산지인데 건포도의 맛이 상당히 좋았다. 3$에 한 봉지를 샀다. 그 거리의 모습은 다른 도시와 좀 색다르다. 말 마차가 달리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사데로 향했다. (현재의 지명은 Salibli) 커다란 성채가 벽부분에 남아있었다. 사데에 오기 전에 이원설 출장님께서 터키정부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씀하셨다. 이러한 유적지들을 잘만 개발해 놓으면 전 세계에서 기독교인들이 몰려들어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종교적 이유로 그래도 기독교적 유물들을 방치해 두는 게 참 미련하기도 하고 애석하다고 하셨다.
두아디라(Akhisar) 에 도착했다. 그 곳도 역시 별로 탐사되지 않은 도심 가운데 있었다. 버가모에 왔는데 그곳은 많은 유적들이 있었다. 저 산꼭대기에 제우스신전을 이어 밑에까지 이르러 헤라클에피우스 신전들이 있었다. 어디가나 로마의 건축물은 웅장했고 원형극장은 반드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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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르에 도착하여 폴리갑의 기념교회에 들어갔다. 서머나의 옛 도시로 현재의 도시에 묻혀버려 흔적이 없으며 단지 사도요한의 제자인 폴리갑 기념교회만 있었다. 그는 86세에 순교했다 한다. 순교당시 로마총독이 마지막으로 폴리갑에게 말하기를 지금도 늦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없다고 한 번만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하자, 그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를 86년씩이나 한번도 버리신 일이 없는데 내가 어찌 하나님을 버릴 수 있겠는가 하여 결국 순교했다고 한다.
그 기념교회에 방명록에 이름을 등록했다. 항공편으로 이즈미르를 떠나 이스탄불로 다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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